
<이상한어린이연극 오감도>(제작 공놀이클럽, 공동제작 종로문화재단, 구성·연출 강훈구)가 2026년 2월 6일부터 14일까지 국립극단 기획초청공연으로 명동예술극장에서 세 번째로 관객과 만났다. 2024년 초연되어 제61회 동아연극상 새개념연극상을 수상하고, 2025년 종로아이들극장 재연에 이은 세 번째 공연이었다. 무엇이 이 작품을 이토록 주목받게 하는 것일까. 올해 『어린이청소년극 IN』은 세 명의 젊은 어린이청소년극 창작자·연구자의 관점에서 <이상한어린이연극 오감도> 공동비평을 기획했다. 어린이청소년극 축제 기획과 평론, 『어린이청소년극 IN』 편집 활동을 해온 김연수, 어린이극 창작·예술교육·사업 운영을 해온 김수빈, 아동청소년극을 전공하고 영유아극 창작자로 활동하고 있는 박주아의 세 가지 시선을 소개한다.
13개의 무서움을 통해 본 우리들의 세상
김수빈(어린이청소년극 창작자·연구자)
“무서움은 피해야 할 감정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살아내야 할 삶의 한 조각입니다.”
이 공연을 본 어린이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어떤 친구는 어린이 배우가 연기를 너무 잘해서 좋았다고 했고, 어떤 친구는 전쟁 장면이 나올 때 진짜 무섭기도 했다고 대답합니다. 이 연극은 우리가 평소 피하고 싶었던 ‘무서움’이라는 감각을 무대 위로 당당히 불러냅니다.
어린이를 동시대의 주인공으로 세우다
보통 어른들은 어린이를 위험으로부터 멀리 떨어뜨려 보호해야 할 존재로만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 연극은 조금 다른 시선을 던집니다. 어린이 역시 어른들과 똑같이 이 도시 속에서 세상의 소식을 뉴스로 접하며 살아가는 ‘오늘날의 주인공’으로 바라봅니다.
이 연극에서 ‘무서움’은 어린이와 어른을 가르는 기준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모두가 인간으로서 함께 느끼고 공유하는 보편적인 감각입니다. 삶이란 무서움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을 솔직하게 인정하며 씩씩하게 살아내는 과정임을 무대는 보여줍니다. 배우들은 장면 곳곳에서 자신들의 무서움을 몸과 언어로 외칩니다. 줄지어 서서 나이들어 하고 싶은 것을 고백하기도 합니다. 마치 무서움이란 것은 인정하고 꺼내 놓을 때 비로소 흩어져 버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삶 속에서 마주하는 13가지 풍경
이 작품은 원작의 구성을 빌려 13개의 짧은 이야기를 엮어서 보여줍니다. 그 순서를 살펴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태어나기 - 달리기 - 부모님 - 학교 - 서울 - ... - 노키즈존 - 전쟁 - 그리고 마지막 ‘나’]
이 차례가 흥미로운 이유는, 공포가 갑자기 나타난 괴물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사회 속에서 살아가며 마주치는 당연한 순간들 속에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학교에 가고 종일 스마트폰을 쥐고 살며, 때로는 누군가에게 거절당하며 일상을 살아갑니다. 그러는 사이사이 우리에게 ‘무서움’이라는 감정이 공기처럼 스며듭니다. 하지만 이 연극은 인간이 태어나 살아가는 그 모든 길 끝에 결국 ‘나’라는 고귀한 존재가 남는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해주는 듯합니다.
‘어디까지 보여줄까’보다 ‘어떻게 함께 볼까’
배제나 전쟁 같은 무거운 주제는 오늘날 어린이들에게도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각국에서 벌어지는 소식을 뉴스로 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연극은 그런 현실을 단순한 ‘소식’으로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무대 위에서 생생하게 느껴지는 ‘지금 이 순간의 감각’으로 표현합니다.
공연은 “무서운 장면을 어린이에게 보여줘도 될까?”라는 의문보다, 어린이와 어른이 동등한 주체로서 “어떻게 이 세상을 함께 바라볼 것인가?”라는 질문을 우리에게 던집니다. 이는 어린이들이 무서운 세상을 홀로 견디게 두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같이 이 세상을 살아가자”며 손을 내밉니다.
일부 장면이 무섭게 다가올까 봐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그럴 때 곁에서 “나도 정말 무서웠어, 하지만 괜찮아”라고 말해 줄 수 있는 누군가와 함께라면 어떨까요? 관객은 무서움이라는 감각을 넘어, 이 연극이 전하고자 하는 것을 마음속에 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어린이의 세계를 바라보기에서 연결하기로
박주아(어린이청소년극 창작자·연구자)
어린이가 무대 위에 있다.
‘이상한 어린이 연극 오감도’는 지금을 살아가는 어린이가 느끼는 불안과 공포를 어린이 배우와 성인 배우가 함께 무대 위에서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13인의 아해가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것들은 때로는 지극히 개인적인 삶의 경험이기도 하고, 때로는 사회적 문제이기도 하며, 또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낄 법한 본능적인 두려움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점은 성인 배우와 어린이 배우가 함께 무대 위에 존재하는 방식이다. 성인 배우가 어린이 배우를 이끌기보다는 서로의 공간을 존중하며 움직이고 함께한다. 오감도가 까마귀의 높은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이미지라는 점을 떠올려 보면, 어린이와 어른은 별반 다르지 않은 존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러한 감각이 무대 위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다만 극을 적극적으로 이끌어가는 어린이 배우의 모습이 새삼 낯설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어른 배우 못지않게 무대 위에서 자유롭게 표현하는 어린이 배우의 모습이 더욱 그렇다. 무대에서 드러나는 두려움과 불안이 어린이 자신의 시선이라기보다 여전히 어른의 시선을 통해 구성된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린이가 무대 위에 있지만, 그들이 말하는 공포와 불안의 언어는 어쩌면 여전히 어른의 질서 속에서 정리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질문이 남는다.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두려움과 불안은 무대 위에서 다루어지는 것과 조금 다르다. 그것은 언제나 명확한 이름을 가지고 나타나지 않는다.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애매하고 모호한 순간이 삶 속에는 존재한다. 그 불투명한 순간은 나조차 알 수 없는 혼란의 시간 속에 우리를 놓아두고, 때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행동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필자는 아기를 낳는 순간 용처럼 내 안에서 솟아오르는 울음을 터뜨렸다. 그때 나는 그것을 새 생명을 만난 기쁨의 울음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1년쯤 지난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그 울음 안에는 탄생의 순간에 대한 두려움과 아픔에 대한 불안이 함께 섞여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무대 위에서 어린이 배우가 이야기하는 공포와 불안이 그렇게 명확하고 분명한 것이라면, 관객은 그것을 통해 진짜 불안이나 공포를 느끼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것, 알 수 없는 시간 속에 놓여 있다는 감각이야말로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
질주하라 하는데 ‘막다른 골목이면 적당하오’라고 말하는 이상의 문장처럼, 우리는 삶 속에서 그러한 아이러니와 모호함을 견디며 살아간다. 이것은 어린이와 어른 모두가 겪는 삶의 경험이다. 문득 새벽녘에 깨어나 엄마의 콧바람을 확인하고 난 뒤에야 다시 잠에 드는 어린 시절의 기억처럼, 우리의 공포와 불안은 때때로 이름 붙일 수 없는 이상한 시간 속에 머문다.
만약 어린이의 삶 속에서 이러한 순간들에 대해 꺼내어 보여주었다면 우리는 얼마나 깊은 연결을 느낄 수 있었을까 상상해 보게 된다. 어린이극이 흥미로운 이유는 어린이의 세계를 보여주기 때문만은 아니다. 어린이를 통해 우리 자신의 삶을 다시 바라보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린이극을 통해 어린이의 세계를 바라보기보다, 어린이와 어른 모두의 삶 속에서 느껴지는 감각이 함께 만나는 순간을 기대하게 된다.
김연수(어린이청소년극 평론가)
‘어린이연극’이란 무엇일까? 어린이들이 ‘보는’ 연극일까, 어린이들이 ‘등장하는’ 연극일까? 혹은 어린이들이 제작 과정에 ‘참여하는’ 연극일까? 무대에 그려지는 어린이들은 어떻게 그려져야 할까?
<이상한어린이연극 오감도>가 어린이청소년공연계를 막론하고 뜨거운 감자가 된 이유는 바로 이 화두를 던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2월 14일 토요일 오후 3시, 함께 공연을 본 세 명의 젊은 연구자가 카페에 둘러앉아 나눈 이야기 역시 각자가 어린이연극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본질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 작품이 그에 부합하는지와 관한 것이었다.
필자의 경우 어린이청소년극 중에서도 주로 청소년극을 다루어 왔으며, 청소년 관객이 어떤 형태로든―관객이든, 협력예술가든, 배우든―연극에 참여하여 스스로 생각하는 주체성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좋은 청소년극을 판단하는 중요한 척도 중 하나로 본다. 청소년이 관객인 작품에서는 청소년이 공연을 보면서 스스로 생각하고 상상할 여지를 얻는지가 중요하고, 청소년이 참여하는 작품에서는 제작 과정에서 자신의 생각을 연극적 요소로 표현할 수 있는지가 기준이 될 수 있다. 이는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가시화하고, 그들의 문화를 직접 만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청소년극의 중요한 문화적 기능 중 하나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상한어린이연극 오감도>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스스로 자신들이 무서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의견을 표현하고, 성인 전문 창작자들과 함께 장면을 구성하며, 그것을 연기로 드러냈다는 점에서 어린이청소년의 목소리가 가시화된 어린이연극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연극을 단순히 ‘어린이연극’이라고 규정하기에는 다소 석연찮은 부분이 있다. 이는 이 작품이 동시대 어린이청소년만의 이야기만이 아니라는 데 있다. <이상한어린이연극 오감도>는 이상의 시 <오감도>에 등장하는 ‘13인의 아해’에 착안하여 ‘제○의아해가 ○○○ 무섭다그리오’라는 제목이 붙은 13가지의 장면을 그린다. 무서움의 대상은 ‘태어나기, 달리기, 부모님, 집, 학교, 서울, 스마트폰, 아이돌, 나이드는 것, 꿈, 노키즈존, 전쟁, 나’이다. 그러나 이 아해는 어린이청소년만이 아니다. 그 공포는 어른인 전문 창작자들의 공포이기도 하다. 예컨대 ‘나이 드는 것’이 무서운 ‘제9의 아해’는 노년에 접어든 배우 장성익이 읊조리는 두려움이다.
마지막장인 13장에서는 어린이배우 김강민과 어른배우 남재국이 조우한다. 세 개의 문 앞에서 어디로 가야할지 갈팡질팡하는 어린 ‘나’ 앞에, 문 하나가 벌컥 열리며 높은 구조물을 신고 지면에서 50cm쯤 떠서 휘청이는 어른 ‘나’가 등장한다. 이 장면은 어린이에게는 미래에 대한 무지로 인해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공포를, 어른에게는 현실을 지탱하며 살아가야 하는 공포를 형상화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어린 ‘나’는 “그래봤자 네가 될 테니까”, 어른 ‘나’는 “그래봤자 너는 나니까”라는 대사를 주고받으며, 세대를 가로지르는 하나의 ‘나’를 받아들인다. 그 순간 13장에 걸쳐 축적되어 온 불안이 비로소 수용된다. 이 장면은 세대의 마주봄과 주고받음을 통해 결국 서로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인식하고, 그 인식을 통해 불안을 견디어 내는 결말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이상한어린이연극 오감도>는 일제강점기 모더니스트 작가 이상(1910~1937)의 시 <오감도>를 매개로 어린이와 청년, 중년, 그리고 노년에 이르는 전 세대의 ‘공포’를 다룬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이 공포는 동시대를 넘어선다. ‘공포’의 감각은 이상이 살았던 시대부터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류를 관통한다. 올해 공연에서는 6장에서 과거의 ‘서울’이 발전해온 과정의 명암을 그려내며 과거와의 연결점을 더욱 분명히 했다. 또한 흥미로웠던 점은 지난해 종로아이들극장에서 만났던 아이들이 올해는 한 뼘 더 자란 모습으로 무대에 섰다는 사실이다. 미래로 한 발 더 다가간 아이들의 얼굴에서, 휘청이는 ‘나’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그리고 나는 조금 너그러워졌다.
그래봤자 너는 나니까. 그래봤자 네가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