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보&자료
  • 아시테지(ASSITEJ)의 새로운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Home > 홍보&자료 > 축제 게시판
  • 축제 게시판
  • 2018-02-09
  • 내 친구 송아지 : 전쟁은 소중한 것과의 이별이란다
  • 작성자 : 비타민 조회수 : 572
드디어 아시테지 축제가 시작되었다. 두둥! 우리가 보기로 한 첫 작품은 <내 친구 송아지>이다. 그리고 오늘은 두 개의 작품을 관람하기로 되어 있다. 아침 공연 시간에 맞추어 오려니 마음이 급했다. 아시테지축제는 정시에 시작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마침 오전 일정이 빈 남편이 태워준다고 하여 쾌재를 불렀다. 늦잠 잔 아이를 집에서 안고 바로 카시트에 태우고 아이들극장에 늦지 않게 도착하였다. 그런데 도착하고 보니 신발을 놓고 온 거다. (난 분명 남편에게 신발 챙기라고 했는데ㅎ) 차에서는 아이가 신발을 신지 않고 양말만 신은 채로 있는 걸 즐기기 때문에 가는 동안은 몰랐다.  다섯살 난 아이를 하루종일 안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우리 연극 보는 사이 남편은 신발 사러 다녀왔고 졸지에 새 신 생긴 아들.

      
송아지 인형이 등장하자마자 아이가 \"귀엽다\" 며 좋아하였다.


<내 친구 송아지>는 황순원의 단편소설 ‘송아지’가 원작이다. 축제 전에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는데 예상치 못했던 결말에 살짝 울 뻔하였다. 언젠가 읽었던 안데르센 평론 생각도 났다.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로 끝나지 않는 (어린이 문학에서의) 의외의 비극적인 결말이 그를 다른 작가와 차별화시킨다는 논조였다. 과연 이러한 결말을 오늘의 공연은 어떻게 다루고 표현할까.

소설이 프롤로그의 형식을 띈 것처럼 연극의 시작도 화자가 등장하여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시작한다. 자막이 영상으로 나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영상막을 전면으로 쓰지 않고 작은 창처럼 보이게 하여 시선을 많이 빼앗기지 않았다.


아버지가 장에서 송아지를 사오셨다. 하지만 돌이 눈에는 볼품없어 보여 마음에 들지 않다 시간이 지나고 점점 송아지와 우정을 쌓게 된다. 돌이와 송아지를 인형으로 시연하고 나머지 인물들은 인형을 움직이던 배우들이 상황에 맞추어 역할을 입는다. 여기에 재미있는 연극적 약속이 작용한다. 인물을 연기하다 다시 인형 기술자가 되면, 무대 위 다른 인물에게는 그가 보이지 않는다. 송아지를 사던 돌이 아버지가 장수와 값으로 실랑이 하고 또 대거리 하려던 찰나 언제 그랬냐는 듯 천연덕스럽게 송아지 발을 잡고 인형과 한몸인듯 시치미 뚝 떼던 배우. 연극은 이러한 부분에 양념처럼 재미를 더한다. 감초 노릇 격의 이장님에겐 이 사람들도 다 보이는 것.

“아저씨, 저희 아빠엄마 어디 갔어요?”
“(저기 있다는 듯이 인형 기술자 한번 보고)내 눈에만 보여”

      
무대예술상과 인기상을 거머쥐은 <내 친구 송아지>



돌이와 송아지의 즐거운 한때는 인형으로 연출되기도 하고 종이로 표현되기도 한다. 목가적이고 평화로운 이 장면은 전운이 감돌기 전 태풍의 눈인 격이다.

소설에서 6.25 전쟁이 닥친 부분은 누가 다쳤다더라, 그랬다더라 식의 소문을 서술하는 식으로 이루어져 독자에게 크게 와닿지 않는다. 연극은 이 부분에서 영상을 사용한다. 전쟁의 영상이 흑백으로 지나가 사실성을 더하되, 화면이 그리 크지 않으므로 큰 의미를 주지 않는 선에서 전쟁이 일어났음을, 그리고 그 분위기를 잠시 체험한다.

인민군이 각 가구를 돌며 공출하는 씬을, 소설에선 좀 위협적으로 느꼈다. 인민군이 총부리를 겨누는 상황에도 송아지를 뺏기지 않으려고 매달리는 돌이 모습에 송아지에 대한 사랑도 짐작할 수 있었다. 연극에서 이 장면은 다소 코믹하게 그려진다. 재주 많은 이 배우들은 음악도 직접 연주했었는데 나팔을 총인양 들고 등장했다. 어린이 관객들은 “저거 나팔인데” 킥킥거렸다. 사실적으로 표현하면 폭력적이라 여겨질 것이 염려되어 그럴 수도.

전쟁은 더 심각해져 돌이네도 피난을 갈 수밖에 없었다. 강이 얇게 얼어 사람만 건널 수 있어 송아지는 두고 갈 수밖에 없는 상황. 돌이는 마실 물과 여물을 넉넉히 챙겨 두고 ‘이 송아지에게 먹을 것을 주세요.’ 라고 써서 송아지 목에 걸어 주었다. 꼭 돌아오겠다고 기약없는 약속을 하고 피난길에 올랐다. 나무가 되기도 하고 들판도 되기도 하며 요긴하게 쓰였던 판넬은 이제 얼어붙은 강의 얼음이 된다. 피난을 가던 돌이네 가족. 그런데 송아지가 저 멀리서 나타난다. 서로에게 달려가는 둘. 그리고 다시 만난 찰나, 얼음이 깨진다. 수평이었던 판넬이 어긋난 채로, 그리고 그 아래의 허공은 강물 속이 된다. 정적.

마지막 다함께 연주하던 장면에 눈물이 맺혔다.

아이는 돌이와 송아지가 죽은 것이 충격이었던지 연극이 끝나고도, 놀다가도,
밤에 자기 전에도 “그런데 송아지는 왜 죽었어?” 묻는다.

다섯 살 어린이가 이념은 모를지라도 이별은 안다. 전쟁의 비인간성과 참상을 이해할 순 없지만 불가항력적인 이별과 죽음에서 오는 정서를 연극이 아니면 어디서 느껴본단 말인가.

그래서 아시테지겨울축제의 주제가 이러하구나. “마음을 키워요.”

시작부터 수작을 관람하곤 기분 좋게 밥을 먹으러 갔다. 참, 아이들극장에서 아이와 밥 먹으러 가기엔 왕돈까스만한 곳이 없는 듯

https://blog.naver.com/yo2njung/2212003567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