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와 송아지의 즐거운 한때는 인형으로 연출되기도 하고 종이로 표현되기도 한다. 목가적이고 평화로운 이 장면은 전운이 감돌기 전 태풍의 눈인 격이다.
소설에서 6.25 전쟁이 닥친 부분은 누가 다쳤다더라, 그랬다더라 식의 소문을 서술하는 식으로 이루어져 독자에게 크게 와닿지 않는다. 연극은 이 부분에서 영상을 사용한다. 전쟁의 영상이 흑백으로 지나가 사실성을 더하되, 화면이 그리 크지 않으므로 큰 의미를 주지 않는 선에서 전쟁이 일어났음을, 그리고 그 분위기를 잠시 체험한다.
인민군이 각 가구를 돌며 공출하는 씬을, 소설에선 좀 위협적으로 느꼈다. 인민군이 총부리를 겨누는 상황에도 송아지를 뺏기지 않으려고 매달리는 돌이 모습에 송아지에 대한 사랑도 짐작할 수 있었다. 연극에서 이 장면은 다소 코믹하게 그려진다. 재주 많은 이 배우들은 음악도 직접 연주했었는데 나팔을 총인양 들고 등장했다. 어린이 관객들은 “저거 나팔인데” 킥킥거렸다. 사실적으로 표현하면 폭력적이라 여겨질 것이 염려되어 그럴 수도.
전쟁은 더 심각해져 돌이네도 피난을 갈 수밖에 없었다. 강이 얇게 얼어 사람만 건널 수 있어 송아지는 두고 갈 수밖에 없는 상황. 돌이는 마실 물과 여물을 넉넉히 챙겨 두고 ‘이 송아지에게 먹을 것을 주세요.’ 라고 써서 송아지 목에 걸어 주었다. 꼭 돌아오겠다고 기약없는 약속을 하고 피난길에 올랐다. 나무가 되기도 하고 들판도 되기도 하며 요긴하게 쓰였던 판넬은 이제 얼어붙은 강의 얼음이 된다. 피난을 가던 돌이네 가족. 그런데 송아지가 저 멀리서 나타난다. 서로에게 달려가는 둘. 그리고 다시 만난 찰나, 얼음이 깨진다. 수평이었던 판넬이 어긋난 채로, 그리고 그 아래의 허공은 강물 속이 된다. 정적.
마지막 다함께 연주하던 장면에 눈물이 맺혔다.
아이는 돌이와 송아지가 죽은 것이 충격이었던지 연극이 끝나고도, 놀다가도,
밤에 자기 전에도 “그런데 송아지는 왜 죽었어?” 묻는다.
다섯 살 어린이가 이념은 모를지라도 이별은 안다. 전쟁의 비인간성과 참상을 이해할 순 없지만 불가항력적인 이별과 죽음에서 오는 정서를 연극이 아니면 어디서 느껴본단 말인가.
그래서 아시테지겨울축제의 주제가 이러하구나. “마음을 키워요.”
시작부터 수작을 관람하곤 기분 좋게 밥을 먹으러 갔다. 참, 아이들극장에서 아이와 밥 먹으러 가기엔 왕돈까스만한 곳이 없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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