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연극이 되다!
송 인 현 (민들레 대표)
책이 연극이 되고 노래가 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지만, 장르의 고정된 시각으로 바라보면 매우 낯선 일이기도 하다. 희곡이 연극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연극이 만들어지는 단서를 희곡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니까 그것이 굳이 문자가 아니더라도, 기호나 그림, 음악이라고 해도 연극을 만드는 단초가 된다면 희곡이라고 할 수 있다. 기호나 그림이 희곡이라면 희곡을 포함한 문학의 모든 것은, 즉 문자는 희곡이 된다. 책이 연극이 되는 데 걸림돌이 되는 것은 사람들의 연극에 대한 좁은 생각이다. 대부분은 연극이라고 하면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미리 연습한 대본을 외워서 행동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연극은 보다 넓은 것이다. 글쓰는 이가 프로듀서로 참여한 작품 가운데 외국 연출가가 연출한 “RUN"이란 작품이 있다. 이 작품은 배우들이 무대에서 걷기만 한다. 아니 가끔은 뛴다. RUN 이니까. 아주 짧게 배우들끼리 싸우기도 한다. 어느 나라 국가인지 모를 그런 국가를 들으면서 손을 가슴에 얹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간은 그냥 걷는다. 걷기만 한다. 그런데 감동이 온다. 이것이 연극이다. 이를 보다 전문적인 언어로 푼다면 DANCE THEATER 라고 한다. 그럼 외국에서 THEATER라고 분류된 경우를 예로 들겠다. 글쓰는 이가 본 작품 가운데는 밴드들이 연주만 하는 연극도 있다. 밴드 연주인데, 음악회가 아니고 연극이다. (덴마크/Batida/Overture, Grand Finale) 영상만 비추는 연극도 있다. 2개의 벽에 영상을 비추다 끝이 나는데 그 예술가는 영화가 아니고 연극이라고 우긴다. 그 예술가가 우겨서가 아니라 돌아서 생각하면 나도 영화라고 하기보다는 연극이라고 생각이 든다. (호주의 Jason Cross) 어떤 연극은 조종사들이 비행기를 타기 위해 훈련을 받는 과정을 보여준다. (캐나다 / A Flock of Flyers) 돌멩이들로 여러 가지 표정을 만들다가 끝나는 연극, 인형극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그런 연극도 있다. 굳이 이야기를 전개하지도 않는다. (스페인/ Stone by Stone) 피아노를 열어놓고 건반이나 줄을 움직이다가 종이를 찢고 그 소리를 즐기고 종이비행기를 날리기도 한다. (폴란드/ Mr.Satie - Made in paper) 글쓰는 이가 최근 본 연극은 - 8개국 예술가들이 모여서 만든 작품 - 배우들이 극적인 상황을 이야기하면서 서로 여러 역을 하면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러고 보니 이야기를 꾸밀 수 있는 것은 모두 연극이 될 수 있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아니 어떤 것은 이야기가 없어도 연극이 된다. 이렇게 연극의 스펙트럼을 얼마나 넓게 갖느냐에 따라 연극이 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가 정해진다. 규격화된 공연만 연극이라고 생각한다면 틀에 박힌 희곡 말고 다른 것으로는 연극을 만들 수가 없다. 하지만 유연하고 넓은 시각으로 연극을 생각한다면 어느 것이든 연극의 소재가 된다. 특히 책은, 문학적 소양은 다른 작업을 하는 처음이 된다.
연극이란 무엇일까? 극단민들레는 “연극은 연극이다”라는 생각으로 연극 만들기를 시작했다. 연극은 배우들이 희곡을 외워서 무대에서 행동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굳이 희곡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민들레의 초기 작업에서는 연극을 만들 때, 대부분 대본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연습을 시작했다. 배우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연극을 만들어 간다. 그런데 “놀보, 도깨비만나다!” 이후, 이러한 연극 만들기에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열심히 집을 지었는데, 설계도가 없었기 때문에 어딘가 허술한 데가 드러나고, 전체적으로 안정된 구조를 만들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연극에서의 설계도, 희곡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이렇게 연극 만들기에 대한 생각이 바뀔 때 만난 책이 “마당을 나온 암탉”이다. 출판사에 처음 “마당을 나온 암탉”을 연극으로 만들겠다고 했을 때, 출판사 측에서는 “이건 애니메이션이지 연극은 아니다”라고 하였다. 그 때 이런 말을 하였다. “어떤 소재를 책으로 만들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이 책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연극을 만드는 소재를 판단하는 것은 연극을 만드는 사람이다. 이 책은 연극을 만드는데 더 없이 훌륭한 바탕이다”라고. 큰소리를 쳤지만 이를 각색하는 작업은 처음부터 만만치가 않았다. 몇 가지 인상이 연극을 만들 수 있는 강력한 동기를 줬지만 동기가 실천으로 옮겨지면서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특히 잎싹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 처음부터 막막했다. 소도구 담당자는 사람 키 만한 닭을 만들어 가져왔다. 너무 좋았지만 움직이기 힘들었다. 배우들이 연습을 하면서 몸과 손을 활용해서 닭을 표현하니, 보다 믿음이 갔다. 그 길로 지속적으로 나갈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형식적으로 ‘물체마임극’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무대라는 정해진 공간에서 양계장을 표현한다거나 청둥오리떼가 날아오는 장면은 영상, 그 이상의 방법으로 상상하기 힘들었다. 그렇지만 영상을 쓰게 되면 비용도 비용이지만 연극적 상상을 방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되도록 실제 새를 날리는 방법을 택하였다. 무대 뒤에서 새떼를 만들어서 날렸지만, 생각보다 시원치 않았다. 상상한 것을 실연해 보이는 과정에서 기술적인 문제, 공간에 대한 문제 때문에 생각한 것을 전혀 구체화 시킬 수 없었던 것이다. 많은 시도를 했지만 극장이라는 공간에 넣을 수 없었다. 더군다나 연습을 하면서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바로 원작으로 돌아가 길을 찾았다. 바탕이 워낙 좋기 때문에 바탕에 의지하게 되는 것이다. 산고에 산고를 거쳐 무대에 올렸다. 관객들의 반응은 좋았지만 뭔가 채워지지 않은 상태였다. 더군다나 흥행적인 측면에서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초연을 현 아르코 소극장에서 했는데, 이 극장은 만석이 120명이다. 120% 관객이 찾아도 적자였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지방에 작품을 팔아야 했는데, 지방 공연장은 대부분 1,000석을 전후한 것들이었다. 그러니 지방에 팔수도 없고 - - - 그래서 몇 년 뒤에 뮤지컬이라는 형식으로 공연을 만들었다. 뮤지컬이라는 형식을 빌지만 민들레가 추구하는 전통을 어딘가에 녹여놓고 싶었다. 그래서 양계장에서 닭들이 모이를 먹는 장면을 휘모리장단에 맞췄고, 의상도 전통 의상에 기초해서 디자인을 했다. 장치나 의상에 많은 돈을 들였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다만 새떼 장면을 조명으로 대체했을 뿐이다. 어쨌든 이 작품은 할수록 적자가 쌓였다. 뮤지컬이라는 형식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하기 때문에 인건비를 감당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할 수 없이 몇 년 쉬기로 했다. 쉬면서 다시 연극의 본질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연극의 3대 요소라고 하는 관객은 과연 어떤 존재일까? 관객! 그들은 돈을 내고 극장에 와서 깜깜한 객석에서 무대의 배우들이 얼마나 잘하는지 검사하는 사람들은 아닐 것이다. 그럼 그들은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일까? 같은 연극을 보고도 어떤 사람은 감동을 받고 어떤 사람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아! 이것은 관객의 몫이지 연극을 만드는 사람의 몫이 아니로구나. 좋은 관객이 되기 위해서는 좋은 독자가 되기 위한 것 이상으로 많은 훈련이 필요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연극은 내가 상상한 것을 무대 위에서 구체화 시키는 작업이 아니라 내가 상상한 것을 관객도 같이 상상하게끔, 아니 관객으로 하여금 내가 상상한 것 이상의 무엇을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주변을 둘러보니, 현대 연극에서 살아있는 연극사라고 불리는 연출가 ‘피터 브륵’이 ‘빈공간’이라는 개념을 들고 나왔다. 빈공간은 우리 전통에서는 너무도 익숙한 개념이다. 그런데 이들은 왜 이런 개념을 들고 나왔을까? 여기에는 연극의 생존과도 무관치 않은 시대적 상황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내 작업으로 돌아오면서 관객을 ‘객석에서 잠자는 사람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상상력을 동원해서 연극을 완성하는 사람’이라는 정의를 내리게 됐다. 그러니까 장치도 최소한으로 하여 관객에게 상상의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상상한 것을 구체화 시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상상한 것 이상의 것을 관객에게 상상하게끔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기까지 옆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이주영 선생님과 함께 한 “책읽어주기 운동”이었다. 책읽어주기 운동을 하면서 알게 되는 이론은 새로운 연극이라는 틀을 정리하는데 큰 힘이 되었다. 그래서 다시 “마당을 나온 암탉”을 무대에 올리기로 한다. 이번에는 등장인물의 수를 최소한으로 줄여서 3인으로 하였다. 작품을 만들면서 이야기 구조에서 막히는 부분이 생겨도 절대 원작을 들여다보지 않았다. 되도록 원작을 멀리 하면서, 배우들에게도 원작을 읽히지 않고 연습을 진행했다. 잎싹을 연기하는 배우만 한 역할을 유지하고 다른 역은 두 명의 배우들이 여러 가지 역할을 나눠서 맞는다. 그런데 아이들이 보는 연극이기 때문에 한 배우가 여러 역할을 할 때 관객에게 확실한 정보를 전달하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이때 생각한 것이 탈이다. 탈을 쓰면 인물이 바뀐다. 내가 목중 탈을 쓸 때는 목중이고 취발이 탈을 쓰면 취발이가 된다. 역할마다 탈을 쓴다면 관객들은 적은 수의 배우라고 해도 쉽게 인물을 따라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를 보다 빨리 바꿔 쓸 수 있다면 한 배우가 여러 역할을 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탈을 꼭 얼굴에 써야 할까? 손에 들고만 있어도 되는 것은 아닐까? 손에 드는 것을 인물이라고 관객에게 약속을 건다면, 그래서 관객이 믿는다면 그것이 굳이 탈이 아니어도 상관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책을 손에 들기로 했다. 연극이 이뤄지는 장소도 아이 방으로 정했다. 이미 책이라는 일상 소품을 사용했기 때문에 공간도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곳으로 정하기로 했다. 그래서 책꽂이에 있는 책들이 움직여서 양계장이 되는 아이디어를 완성했다. 이러한 형식의 공연이 배우들이 바뀌면서 5인 혹은 4인으로, 도서관이나 집안 거실로 상황을 바꿔가면서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또 문제가 생겼다. 마당을 나온 암탉이 만화 영화로 만들어져서 흥행에 성공을 한 것이다. 공연에서 흥행이라면 뮤지컬이다. 뮤지컬 제작자들이 영화와 연계해서 흥행작을 만들자고 제안을 해오기 시작했다. 민들레가 추구하는 연극적 가치와 충돌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그들 가운데 최대한 제작의 규모나 공연의 가치를 극대화 시킬 수 있는 제작자와 손을 잡았다. 여기가 끝은 아니다. 창극이나 무용극으로 만들기도 하였지만 마당을 나온 암탉은 더욱 더 다양한 영역을 탐구하게 만든다. 뮤지컬 이야기가 나오기 전부터 인형극을 활용한 1인, 혹은 2인극을 만들 생각이었다. 마당을 나온 암탉에 나오는 캐릭터들로 하여금 스스로 놀이를 찾게 하여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새로운 형식의 이미지 연극도 구상하고 있었다. 뮤지컬 작업 이후 새로 발표할 예정이다. 마임을 하는 사람들과는 마임을 접목해서 풀려고 하는 작업도 구상하고 있다. 3D 영상 작업을 하는 사람들하고는 3D를 활용한 공연을 만들려고 시도하기도 한다. 이렇게 좋은 책은 무한한 변신을 하면서 다른 예술품으로 변신을 한다. 마당을 나온 암탉이라는 책은 나로 하여금 다양한 도전을 하게 만든다.
여기에 비해 “똥벼락”과 같은 작품은 책에서 기본적인 단서만 가지고 새로 만든 작품이다. 이 연극은 책장을 넘기면서 대본을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은 아마도 원작자와 각색자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원작은 밭농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지만 연극에서는 논농사가 중심이 되어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 작품은 그림책의 틀거리 안에서 마음껏 놀았다. 우리 전통에 있는 농사연극(진도 길꼬냉이, 충청 산유화 등)을 그림책에 맞춰 재구성한 것이다. “랑랑별때때롱”과 이를 패러디한 “별난 탐험대”는 전혀 다른 과정을 겪는다. 처음, 출판사에서 공연의뢰가 들어왔다. 연극에 대한 고정틀 안에서 주문을 한 것이다. 마당을 나온 암탉을 하면서 경험한 시행착오를 그대로 겪을 수도 있는 문제였다. 그래서 이 작품을 연극마을에서 자연 환경을 활용한 이동 연극으로 만들겠다고 하였다. 출판사에서는 관객 입장수익보다는 다른 면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었던 모양이었다. 쉽게 동의를 해서 공연을 준비했다. 그래서 비닐하우스를 짓는다고 받은 지원금으로 극장을 지으면서 5각형으로 만들었다. 극장 이름도 ‘별극장’이라고 붙였다. 그런데 그 해에 진행하지 못했다. 3년 뒤에 다시 진행을 하는데, 이번에는 출판사가 원작자(재단)과 저작권 문제를 풀지 못했다. 출판사와는 미리 공연을 약속을 한 상태에서 연습을 진행하고 있는데, 정작 저작권을 받지 못했으니. 할 수 없이 작품에서 빠져나오는 작업을 하였다. 그래서 탄생한 작품이 “별난 탐험대”이다. 그런데 참으로 특이한 것은 원작을 그대로 연극으로 만들 때보다 훨씬 재미있는 상황이 만들어졌고, 연극이라고 할 수 없는 부분까지 연극의 영역에 담을 수 있는 열린 연극을 만들게 되었다. 아직 본격적인 공연에 붙인 것은 아니지만, 워크숍으로 개발하고 있는 옛이야기 공연들은 “서정오의 옛이야기”라고 이름을 붙이고 있다. 이 경우, 굳이 서정오의 옛이야기라고 이름을 붙이는 것은 - 서정오 선생님은 책에서 나와 자연스러운 자기 말로 옛이야기를 전하라고 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 서정오 특유의 언어, 그 말맛을 즐기고 나누기 위해서다. 무엇보다 아름다운 말은 연극을 만드는 중요한 요소인데, 서정오의 옛이야기는 아름다운 우리말을 눈으로 익히고 귀로 익히고 입으로 익힐 수 있다.
좋은 책은 어떤 자극을 준다. 그리고 책을 읽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그 자극이 가는대로, 때로는 노래로, 때로는 춤으로, 때로는 그림으로, 그리고 때로는 연극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연극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연극이라는 선입견에 사로잡히지 않은 것이다. 그러면 책은 보다 다양한 영역을 열어주는 친구가 된다. 이러한 작업은 무엇보다 열린 마음, 열린 생각을 갖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