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4회 테이블인형극제는 2026년 3월 21일과 22일 대학로 서울예술인지원센터 5층 프로젝트룸에서 진행되었다. 테이블인형극제가 주최/주관하였고, 극단 인형엄마, 극단 애기똥풀, 기린 스튜디오, 아주 작은 연극놀이터, 그레타 인형극장, 회색 늑대가 협력하였다. 축제를 만든 사람들을 살펴보면, 엄정애 예술감독, 장대림 기획/연출, 장성환 기술감독, 배이화 퍼레이드 연주, 조은진 축제 기록, 축제 운영에는 김장미, 김민지, 김미섭 등이 수고하였다.
테이블인형극제에서 볼 수 있는 인형극 공연들은 축제 명칭에서 알려주는 바와 같이, ‘테이블인형극’인데, 테이블인형극은 인형극 무대가 테이블 즉, 작은 탁자라는 점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축제는 한국인형극계의 어르신 엄정애 선생님께서 2013년부터 인형극 보급과 우리 인형 제작 방법을 널리 알리고자 만들어서 운영해 왔다. 테이블인형극제의 주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창작 워크숍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인형극의 주인공들은 창작 워크숍이 진행되는 창작실험실에서 새롭게 태어난 풋풋한 인형들이다. 이 인형들은 세련되고 화려하기보다는 거칠고 투박한 부분이 더 눈에 보인다. 그래서 완벽함보다는 틈이 주는 위로라는 이 축제의 지향을 금방 이해할 수 있다. 결국, 관객들은 인형을 보면서 인형을 만드는 예술가의 온기와 정성을 느끼고, 무엇을 보여주거나 나누려고 하는지를 깨닫게 된다. 간단히 말해서 이 인형극제는 관객에게 인형극인의 메시지와 서사, 세계관과 만나는 기쁨을 주고, 동시에 인형극인에게는 좋은 인형극을 만들려고 애쓰는 인형극인들의 출발선을 응원한다. 제14회 테이블인형극제의 주요한 특징과 의미를 대표적인 작품 중심으로 살펴보자.
조상의 지혜와 정서가 담겨있는 옛이야기의 힘
: <저승에 있는 곳간>, <도깨비 가마>, <깜박깜박 도깨비>, <강치가 들려주는 독도 이야기>, 베트남 전래동화 <별나무 이야기>, <오히아와 레후아>, <엄마 까투리> 등
먼저, 제14회 테이블인형극제는 옛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공연이 많았다. 성인들이 어렸을 때 들었던 옛이야기, 지금 어린이들이 자라면서 책이나 영상 등으로 접하는 옛이야기에서 출발하여 제작한 작품들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가령, <저승에 있는 곳간>이나 <강치가 들려주는 독도 이야기>, <엄마 까투리> 등의 작품은 중심 서사가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렸거나 초등학교에서 교육 활동을 하면서 많이 다루었던 이야기이다. 교육계나 가정에서 이미 검증이 완료된 이런 옛이야기는 믿고 볼 수 있는 매력적인 텍스트이다. 이와 유사한 범주에 속하는 작품으로 <도깨비 가마>, <깜박깜박 도깨비>와 같이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재미있고 의미 있는 우리 옛이야기도 있었다. 또한, 외국에서 전해진 옛이야기 가령, 베트남 전래동화 <별나무 이야기>나 <오히아와 레후아>와 같은 작품도 다문화사회가 된 우리의 삶을 고려하면 주목해야 하는 해외의 옛이야기 텍스트이다.
이 가운데 한 작품인 초챙(김장미)의 <저승에 있는 곳간>을 보면, 널리 알려진 옛이야기를 각색하여 테이블인형극으로 만든 대표적인 작품이다. 인형극의 주인공은 사또인데, 백성들의 형편을 살피지 않는 탐관오리이다. 그래서 홍수가 나서 당장 먹고살기도 힘든 백성들에게 무거운 세금을 징수하였고, 불만이 쌓인 사람들이 관아에 항의하러 올까 봐 유일한 통행로인 다리를 끊어버리라고 지시했다. 그런 후 사또는 밥을 두 그릇밖에 못 먹었다고 아쉬워하면서 잠에 빠져든다. 사또가 잠에서 깨어보니 그는 알 수 없는 곳에 와 있었다. 관객에게 여기가 어디냐고 물어보았다. 어느 관객이 “지옥”이라고 대답하였다. 염라대왕은 저승에 온 사또에게 뭔가 착오가 있었던 것 같다면서 돈을 내면 다시 세상으로 보내주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또의 저승 곳간엔 동전이 한 개도 없었다. 구름TV를 통해 사또가 이승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확인해 보니, 정말 나쁜 사또라는 게 확인되었다. 관객 배심원에게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어보니 “처형”하라는 관객도 있었고, 다른 어린이는 “다시 착하게 살 기회를 줘요!”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이 말을 듣고 공연자는 “고맙습니다”라면서 사또를 이승으로 돌려보낸다.
이 작품은 옛이야기를 각색하는 과정에서 CCTV가 아닌 구름TV를 등장시킨다든지, 관객과 소통하면서 서사를 전개하는 등 창의력과 연기력이 빛나는 연행을 보여주었다. 또한, 기존 인형극과 달리 검은색 배경 막 대신 알록달록한 배경 막을 사용하여 공연의 분위기를 새롭게 하였고, 어린이들이 사또 인형 캐릭터를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게 무섭거나 근엄하게 만들지도 않았다. 예술가가 공연을 준비하면서 많이 고민한 흔적을 여러 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국내외의 옛이야기는 우리 사회의 기성 집단과 새로운 세대인 어린이 관객을 연결하여 하나로 통합하는 안정적이고 따뜻한 서사 유형이다. 다소 철이 지난 서사로 보여 동시대성이 미흡한 내용으로 보는 이들도 있지만, 한 사회가 유지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서사가 든든하게 뒷받침되어야 한다. 신화와 전설, 민담과 같은 설화를 활용하면, 공동체를 하나로 통합하고 발전하게 하는 원동력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옛이야기로 만든 테이블인형극은 앞으로도 많이 제작되어 널리 유통될 필요가 있다. 물론, 서사 자체로도 감동과 재미를 주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이다.
다양한 유형의 인형으로 형상화한 우정과 연대의 힘
: <광수야 광수야>, <쿨쿨이와 쓱쓱이>, <한 개만>, <우리는 친구>, <쓰레기장의 마법사>, <어린왕자와 눈먼 생쥐>, <그레타의 가방>, <무지개 아이> 등
테이블인형극제에서 상정하는 축제의 주요 관객은 어린이이다. 물론 어린이와 함께 관람하는 가족이나 인형극계 관계자들도 공연의 주요 관객이지만, 어린이의 눈높이를 고려하여 작품을 만드는 것을 가장 중시한다. 그래서 공연 시간도 짧고, 공연의 내용도 너무 복잡한 것은 피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점과 함께 인형극의 주제나 소재도 중요한데, 친구 관련 공연이 많았다.
어린이들이 세상을 살아갈 때 필요한 것은 가족만이 아니다. 가족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친구이기 때문이다. 어린이들은 친구를 확대하여 이웃과 손을 잡고, 서로 도움을 주거나 도움을 받으면서 함께 살아가야 한다. 따라서 인형극에서 다루는 메시지에 친구와의 우정이나 이웃과의 연대가 포함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고 가치 있다.
이번 테이블인형극제에서도 이런 맥락에서 ‘우정과 연대’를 주요 메시지로 한 작품이 많았다. 예컨대, <광수야 광수야>, <쿨쿨이와 쓱쓱이>, <한 개만>, <우리는 친구>, <쓰레기장의 마법사>, <어린왕자와 눈먼 생쥐>, <그레타의 가방> 등이 여기에 속하는 작품들이다. 그 가운데 한 작품인 <광수야 광수야>를 살펴보자.
이 공연은 공연자 이정국이 창작하고 인형을 만들어서 준비한 작품이다. 그는 다른 공연자들처럼 워크숍 기간인 8주 동안 고민하면서 인형을 만들었고, 이야기를 갈고 닦았다. 1987년 제주도, 어린 정국과 친구 광수가 등장한다. 정국은 어린 시절 옆집에 살았던 광수와 함께 학교를 다녔다. 수업 후에는 오징어 게임이나 술래잡기를 하면서 사이좋게 놀았다. 두 사람은 때때로 함께 지네를 잡으러 가기도 했는데, 지네를 잡으면 그것을 팔아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면서 커서 뭐가 되고 싶은지를 말하기도 하였다. 그때 광수는 ‘바쁘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런 말을 한 친구를 기억하며, 그가 어디서든 잘 지내길 바란다고 말한다. 공연은 “보고 싶다, 친구야. 어디서든 잘 지내길 바라!”라는 배우의 응원으로 마무리된다.
이 작품에는 무엇보다도 먼저 친구를 사랑하는 예술가의 마음이 잘 표현되어 있었다. 그리고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인형의 형태가 검지와 중지에 인형을 끼운 특별한 손가락 인형이었다. 그래서 더 귀엽고 사랑스러운 어린이의 느낌이 잘 전해졌다. 그리고 여러 공간을 표현할 때 팝업으로 만든 배경을 사용하여 공연의 메시지나 정서와 잘 어울리는 무대 미장센을 완성할 수 있었다.
인접 장르와 소통하는 인형극의 경계 확장력
: 작은 음악극 <연옥이 이야기>, 시 읽는 인형극 <오리 망아지 토끼>, <별에서 온 예언자>, <혀를 사왔지>, <취한 배를 탄 눈물인형> 등
극단 애기똥풀(장대림)은 백석의 시에서 영감을 얻어서 공연을 만들었다. 그는 문자로 표현된 문학의 세계를 인형 캐릭터와 대사, 몸짓으로 살아 움직이게 하였다. 시에서 상상할 수 있는 인물과 장소, 서사, 평화로운 풍경이 테이블 위에 따뜻하게 펼쳐졌다. 어린이가 아버지랑 오리를 잡으러 갔다가 기다림에 지쳐 심술이 난 모습이나, 집 앞을 지나가는 망아지를 내놓으라고 떼쓰는 모습이 밉지 않고 귀여웠다. 나무하러 가는 아버지를 따라가서 토끼를 잡으려다 놓치고 울상이 된 어린이와 그 소년을 너그럽게 다독이면서 품어주는 따뜻한 아버지의 모습이 한 편의 동화처럼 보였다.
오리 망아지 토끼
백석
오리치를 놓으려 아배는 논으로 내려간 지 오래다.
오리는 동비탈에 그림자를 떨어트리며 날아가고 나는 동말랭이에서
강아지처럼 아배를 부르며 울다가
시악이 나서는 등뒤 개울물에 아배의 신짝과 버선목과 대님오리를
모다 던져 버린다.
장날 아츰에 앞 행길로 엄지 따러 지나가는 망아지를 내라고
나는 조르면
아배는 행길을 향해서 크다란 소리로
ㅡ매지야 오나라.
ㅡ매지야 오나라.
새하려 가는 아배의 지게에 치워 나는 山으로 가며 토끼를
잡으리라고 생각한다.
맞구멍난 토끼굴을 아배와 내가 막어서면 언제나 토끼새끼는
내 다리 아래로 달어났다.
나는 서글퍼서 서글퍼서 울상을 한다.
인형극과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이는 예술 장르인 ‘시’와 만나는 이 작품을 보면서 인형극은 어떤 장르와도 협업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오리 망아지 토끼>는 인형극이 단순한 여가 활동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오래도록 음미하면서 성찰하게 하는 깊이와 넓이가 무한한 예술 장르라는 것도 확인한 주목할 만한 작품이었다.
공연자는 이 인형극에서 관객과 소통하는 것을 잊지 않았고, 인상적으로 진행하였다. 백석의 시를 세 부분으로 나눠서 관객 세 사람에게 시의 한 대목씩을 큰 소리로 읽어 달라고 부탁했다. 공연은 예술가가 인형극으로 시의 한 대목을 테이블 위에 펼쳐 보였고, 그다음에 관객이 이와 관련한 시의 한 부분을 낭독하는 방식으로 연행되었다. 어린 아들과 아버지의 대사를 표현하는 배우의 목소리 연기가 매우 뛰어나서 공연의 시적 메시지가 오래도록 관객의 기억에 갈무리될 것으로 보였다.
최근 세계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 등으로 포화 속에서 피눈물을 흘리면서 울부짖고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 인형극이 가장 멀리하는 차별과 혐오, 살육이 넘쳐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인류가 쌓아온 지혜인 용서와 화해, 우정과 연대, 공동체 정신의 회복에 천착해야 한다. 우리 테이블인형극제는 이런 시대정신을 밑바닥에서 가장 든든하게 구현해 왔으며, 앞으로도 동시대성을 선도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