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와 나의 이야기’를 빤히 바라보기 - 아가들을 위한 연극 <성게와 달팽이> 리뷰
공연장에 들어가며
김포 신도시를 지나 강화에 못미친 버스 정류장에 내렸다. 한산한 평일 오후, 버스 정류장 뒷편 외따로 위치한 공연장 로비에 있자니 아기와 한 조를 이룬 관객들이 하나둘씩 로비 문을 열기 시작했다. 아기띠에 올라 엄마와 몸을 착 붙이고 낯선 곳을 살펴보는 아기, 아빠의 손가락을 잡고 걸어 들어오는 아기, 할머니, 할아버지가 미는 유아차에 몸을 싣고 유유자적하게 입성하는 아기…. 약 열 팀의 관객들이 공연장에 모이는 동안 배우들은 무대의상을 그대로 입고 로비에 나와 아기와 보호자와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나누며 얼굴을 익힌다.
공연 십오 분 전 시작되는 공연의 풍경
극단 들락의 ‘아가들을 위한 연극’ <성게와 달팽이>가 시작되기 십오 분 전의 공연장 풍경이다. <성게와 달팽이>는 김포시에 위치한 통진두레문화센터(김포문화재단)에서 기획한 ‘처음 만나는 극장 시리즈’의 ‘우리 아이 생애 첫 예술 경험 <영유아 스테이지>’를 여는 공연으로서 2026년 5월 19일 2회 공연되었다. 2017년부터 ‘아가 연극’을 꾸준히 탐색해 왔던 극단 들락은 각 지역의 크고 작은 공연장에서 70회 이상 <성게와 달팽이>를 공연하면서 24개월 이하 영유아 관객들과 공연으로서 소통하는 방법에 대해 매회 새롭게 경험하고 있다.
배우들과 함께 극장에 들어가 객석 사이 통로를 지나 무대 앞에 다다르면 모두 신발을 벗고 무대 위에 오른다. 흔히 볼 수 있는 지역 공공 공연장 무대 위에 마련된 무대와 객석은 하늘거리는 막으로 어두운 바깥 공간과 구분되어 있다. 보드라운 러그와 방석이 아기와 보호자가 앉을 자리를 알려준다. 아기띠, 혹은 보호자의 품에서 내려온 아기 관객들이 공간을 둘러보고 걷고 기면서 이곳이 어떤 곳인지 탐색하고 있을 때, 두 명의 배우가 이들과 마주 앉으면서 공연은 시작된다.
배우들이 관객들과 하나하나 눈을 맞추며 얼굴 인사를 나누는 것이 이 공연의 시작이다. 아기 관객에게 무대 위 모든 곳을 바라보고 살펴보며 방문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말로 배우들의 목소리를 들려주면서 서로 익숙해질 시간이 마련된다. 아기가 소리를 내거나 울어도 괜찮으며, 수유나 기저귀 교체를 위한 공간이 따로 마련돼 있다고 이야기해주는 배우들의 목소리는 공연 편의를 위한 안내라기보다는 공연의 한 부분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공연 시작 전 로비에서 배우와 아기 관객의 만남, 함께 신발을 벗고 무대에 오르는 길 역시 공연의 한 부분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스무 개의 손가락, 두 개의 등, 이십 여 명의 관객 - ‘너와 나의 이야기’
‘성게와 달팽이’라는 이상한 제목을 가진 이 연극은 ‘너와 나의 이야기’, ‘나와 나의 이야기’, ‘나, 너, 우리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성게도, 달팽이도, 혹은 바다나 풀숲을 연상케 하는 어떤 대사나, 무대장치, 소품도 없이 천연덕스럽다.
두 명의 배우는 나란히 앉았다가 등을 맞대고, 등과 어깨로 서로 체중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상대를 찾아다니는가 하면, 어느새 데굴데굴 굴러 저만치 떨어져 있기도 한다. 서로의 몸에 올라타고 바닥에서 얼굴을 들여다보기도 하다가, 어느새 그들의 손이 주인공이 되어 서로에게 그리고 관객에게 무언의 말을 건다.
두 배우의 손은 새와 개, 혹은 거미가 되어 서로를 탐색하고 몸을 두드리며 여러 가지 소리를 발견한다. 그리고 갑자기 스무 개의 손가락이 삐죽삐죽 솟아났다가 부드럽게 연결되어 움직이면서 손 그 자체가 여러 가지 모양과 리듬을 만들어 관객과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손의 이야기를 돕는 것은 몸에서 날 수 있는 다양한 소리들이다. 특히 입으로 내는 똑딱 소리는 노크 소리인 듯, 어떤 새의 소리인 듯했는데, 관객들에게 손가락들이 때로는 부드럽게, 혹은 장난스럽게 다가가 나누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 소리는 손가락들의 목소리와 대화인 것처럼 들린다.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손가락들을 바라보던 아기 관객의 시선은 두 배우의 등으로 옮겨간다. 관객에게 돌아앉은 두 배우의 등에는 눈코입이 그려져 있다. 두 개의 등은 커다란 얼굴이 되었다. 배우의 움직임에 따라 두개의 등-얼굴은 다양한 표정으로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관객과 함께 ‘너와 나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아기 관객의 ‘빤히 바라보기’
배우들에 의해 수십 개의 ‘너와 나의 이야기’가 작고 짤막한 형태로 이어지고 변주되며 흘러 다니는 가운데 필자가 주목한 공연의 요소는 ‘바라보기’이다. 이는 주로 관객들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특히 아기 관객들의 ‘빤히 바라보기’는 공연 속 이야기와 공간, 배우와 보호자를 종횡무진 가로지르거나 연결하는 힘을 지닌 것처럼 보였다. 누구나 주변의 아기와 소통하다가 그들이 바라보는 힘에 끌려 시선을 옮기거나 압도되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를 무엇이라 부르면 좋을까? 관조, 응시, 대면, 직면, 시선 등 비슷한 단어와 개념들, 그 속에 내포된 서로 다른 세상과의 거리 조절, 대상을 파악하고 관계 맺는 힘의 차이를 헤매다가 마침내 ‘빤히 바라보기’를 선택해 보기로 했다.
스무 개의 손가락이 건네 오는 이야기에, 아기 관객은 자신의 목소리와 몸으로 대답하고 악기와 배우의 몸이 내는 소리에 끌려 무대 안으로 저벅저벅 걸어가다가도, 문득 데구르르 굴러 관객석의 뒤편을, 천장을, 무대 한편의 연주자를, 혹은 소리의 원천인 악기를 빤히 바라보았다. 이는 주의집중의 지속 시간이 짧은 아기의 시선을 모으기 위해 유념해야 한다는 등의 영유아 공연 창작의 ‘규칙’이 지켜졌는가와는 상관없이 벌어지는 자연스러운 ‘관객되기’(Audiencing, Matthew Reason, 2010)의 행동이다. 아기 관객들은 무대와 배우로 한정해서 공연을 바라보지 않고, 여느 성인 관객과 같이 공연 속 이야기에 몰입하기로 스스로를 규정하지 않는다. 대신 공연이 이루어지는 공간 및 요소 전체를 직접 기어가 방문하고, 빤히 바라보고 감각함으로써 공연을 경험한다.
아기의 빤히 바라보는 시선이 특히 강렬하게 머무는 곳은 사람이었다. 배우와 자신을 번갈아 바라보는 보호자의 표정과 몸, 빤히 바라보는 시선에 얽힌 다른 아기 관객들, ‘나와 너의 이야기’를 전하려 자신과 눈을 맞추는 배우들. 그리고 그들 역시 아기 관객의 ‘빤히 바라보는 힘’에 동조하며 시선을 옮겨 공연 공간, 다른 관객을 포함한 공연 전체를 함께 경험하는 듯했다.
이렇듯 <성게와 달팽이>는 ‘너와 나의 이야기’를 공연의 핵심 내용으로 삼고 아기 관객에 대한 창작자의 태도와 관점을 거쳐, 아기 관객의 ‘빤히 바라보기’에 공연 곳곳을 적극적으로 열어주는 선택을 한 듯하다. 다만 공연 속 이야기가 펼쳐지는 주요 공간 구성을 배우와 관객이 마주하는 형태로 계속할 것인가 혹은 서로가 서로에게 더 침투할 여지를 공간적으로 형상화할 것인가, 그리고 공연 말미 아기와 보호자가 자유롭게 소통하고 악기와 공간을 경험하는 시간을 어떻게 구성해 낼 것인가에 대해서는 창작자로서 남은 갈등과 선택의 여지가 엿보인다. 그리고 그 기준은 빤히 바라보기를 포함하여 아기 관객의 ‘관객되기’의 과정일 것이다.
공연장을 나가며
아기 관객과 보호자가 각각의 속도에 맞춰 놀이를 하고 공연장과 배우, 악기를 속속들이 탐색하다가 마침내 한 명, 한 명씩 무대를 떠나고 배우들은 이를 배웅했다. 필자는 마지막 관객으로 늦장을 부리다가 공연장을 나왔는데, 평일 오후의 오묘한 햇빛 속의 공연장 주변은 여전히 한산하고 낯선 곳이었다. 아기 관객과 보호자들은 이미 차를 타고, 혹은 걸어서 집에 돌아간 듯하다. 신도시 외곽의 공연장을 찾아 낯선 이름의 영유아 공연을 보기로 마음먹고 표를 예매하는 일, 평일 오후 공연장을 찾아오고 돌아가며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까지가 공연의 연장선이라고 하면 과장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영유아 공연은 품을 들여 소수를 위해 기획한 공연의 성사, 공연 장소와 접근성, 공연을 선택하고 발을 움직이기까지의 보호자의 결심, 유심히 아기를 살피면서 다른 관점에서 공연을 함께 경험하고 기억을 이어가는 보호자의 관객 경험까지가 공연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이기에 마지막 순간까지 공연장의 풍경을 살펴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덧붙임: 배우 박지혜에 따르면 공연 제목 <성게와 달팽이>는 공연의 단서를 소개한 연극놀이에서 참여 어린이가 붙여준 제목이라고 한다. ‘이유는 없고 왠지 그 제목이 적절하다’는 어린이의 설명에 창작자들은 직관적으로 동의하면서도, 공연을 거듭하고 수정하는 가운데 이유를 발견하고 의미를 부여했다. 힌트는 ‘너와 나’일 것이며, 수수께끼로 남은 부분은 이후 다른 아기 관객들을 만나며 이어질 공연에서 차츰 풀어나갈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Reason, Matthew. The Young Audience: Exploring and Enhancing Children’s Experiences of Theatre. UCL Institute of Education Press,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