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 서커스’의 계보와 동시대적 변용
전통적 서커스가 신체의 한계를 시험하는 기예와 동물 묘기를 통해 경이로움을 선사했다면, 동시대 서커스는 극적 서사와 무대 미술, 그리고 관객과의 유기적 소통을 중심으로 그 패러다임을 전환해 왔다. 1980년대 캐나다 퀘벡에서 발원한 ‘태양의 서커스(Cirque du Soleil)’가 보여준 종합 공연예술로의 진화는 현대 서커스의 전형이 되었다. 광주시 문화재단의 ‘광주 어린이 상상극장’ 개막작으로 선정된 〈칠드런 아 스팅키〉 역시 이러한 ‘뉴 서커스(New Circus)’의 궤적 위에 서 있다. 특히 이 작품은 어린이 관객을 단순한 관찰자에서 능동적 주체로 격상시키며 서커스 문법의 새로운 지평을 제시하고 있다. 2016년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Children’s Choice Award’를 수상하며 전 세계 어린이 관객들과 만나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는 이 작품은, 화려한 장치에 의존하기보다 배우의 몸과 관객의 에너지가 결합할 때 발생하는 동시대 서커스의 역동적인 생명력을 여실히 보여준다.
관객의 역할 전이: 일방적 관람에서 ‘공동 창작’으로의 이행
먼저 전통적인 서커스에서 객석에 앉아 관람만을 하던 관객의 역할은 큰 변화를 가져온다. 〈칠드런 아 스팅키〉 공연이 시작되면 카일리와 제이슨이라는 이름의 두 배우가 무대 위에 등장하여 관객들과 가벼운 인사를 나눈다. 그리고 시작되는 신체를 이용한 테크닉은 ‘어디선가 냄새가 나’라는 대사와 함께 멈춘다. 배우는 서로에게 방귀를 뀌었는지 물으며 서로를 의심하고 그 의심이 객석의 아이들에게까지 확장되며 공연의 분위기는 유머러스하게 진행된다.
카일리는 어디선가에서 아이들은 겁이 많고, 게으르고, 운동신경이 없고, 철자를 틀리고, 상상력이 없고, 냄새가 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며 그것을 검증하겠다고 선언 한다. 그러나 만약, 겁이 없다고 생각하는 어린이가 있다면 무대 위로 올라오라고 하며 지원자를 찾는다. 기존 서커스의 일방적인 소통에서 벗어나 관객에게 질문을 하고 대답에 반응을 하면서 관객을 공연으로 끌어들이는 놀이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전통적인 서커스는 인간의 경이로운 신체 기술을 선보여 관객에게 감탄과 전율을 안겨 준다. 서커스의 출연자는 오랜 훈련을 거친 신체를 이용하여 무대에서 한계에 다다르는 곡예를 펼쳐 관객을 집중시킨다. 어린이 관객이 무대 위에서 함께 곡예를 할 수는 없기 때문에 대체로 서커스에 어린이가 참여하는 일은 드물다. 하지만 〈칠드런 아 스팅키〉는 어린이 관객이 겁이 많다는 편견을 깨고자 무대 위에 직접 오르고 배우와 함께 무대를 꾸민다.
직접 무대에 오르는 어린이 관객들은 겁이 많거나 게으르거나, 운동신경이 없다는 등의 오해를 풀기 위해 제이슨이 머리 위에 쓴 바구니에 공 던져 담기, 훌라후프 돌리기, 공 저글링하기 등의 도전 과제를 수행해낸다. 이런 종목은 일반 성인과 서커스를 공연해 온 훈련받은 배우에게는 어렵지 않다. 하지만, 무대 위에 올라온 어린이 관객에게는 쉽지 않을 수 있다. 도전 과제를 수행 해내기 위해 한 번에 여러 명의 어린이 관객에 무대 위에 오르게 되는 한 번에 주어진 과제를 성공 하는 어린이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어린이도 있다. 이때, 라일라는 객석에 앉아 있는 관객들은 무대 위의 어린이 관객이 도전 과제를 성공 할 수 있도록 응원을 유도한다. 객석 전체가 한 어린이의 성공을 응원하고, 성공을 함께 기뻐하며 공연의 극적 긴장감은 최고조에 이르렀다가 해소된다. 도전 과제를 성공한 어린이도 객석에서 응원한 관객도 모두 성취감을 느끼며 도전 과제가 하나씩 마무리된다. 어린이 관객이 무대에서 4가지 정도의 도전 과제를 성공해 내며 어린이에 대한 라일리의 편견을 지워내기 때문에 극적 최고조는 최소 4번 이상 만들어진다. 어린이 관객에 의해 극의 흐름이 변하고 공연이 매번 달라지게 되고, 이는 서커스를 ‘경이로움의 관람’에서 ‘경험과 공감의 공유’로 재정의하는 동시대적 흐름과 정확히 맞물린다.
청각적 코드의 전략적 활용: 세대 간 정서적 동기화
〈칠드런 아 스팅키〉의 관객을 극에 몰입시키는 또 다른 장치는 ‘청각적 코드’이다. 전통적인 서커스의 음악은 현장에서 라이브로 연주되며 무대 위에서 행해지는 묘기의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데 사용되었다. 드럼 등을 이용해 공중 곡예를 준비하는 과정 동안 관객의 몰입을 유도하거나 성공해 내거나 실패하는 순간을 관객이 알 수 있도록 음악을 이용하여 관객의 시선과 감정을 한곳으로 모으고 긴장과 환호의 타이밍을 조율했다. 〈칠드런 아 스팅키〉에서는 부모 세대가 익숙한 1980~2000년대에 유행했던 빠르고 밝은 분위기의 팝 음악과 BTS(방탄 소년단)와 블랙핑크 등 현재 우리나라에서 유행하는 아이돌 음악을 공연의 전체적인 배경으로 사용한다.
부모 세대가 어릴 때부터 자주 접하며 귀에 익숙해진 멜로디는 첫마디에서부터 ‘아, 이 노래!’ 하는 반가움을 불러일으키면서, 자연스럽게 무대 리듬에 따라가도록 유도 한다. 익숙한 음악은 어린 시절의 감성과 향수를 자극하여 마치 자신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듯한 정서적 전이를 경험한다. 이 회귀적 정서는 공연장 안에서 ‘비판적 거리두기’ 대신 ‘동조적 참여’로 작동한다. 낯선 현대 서커스 형식에 경계심을 갖기보다는, 손뼉을 치고 자연스럽게 리듬을 맞추며 무대 위 배우와 어린이 도전자에게 아낌없는 환호를 보낸다.
음악은 세대 간 공통의 정서를 매개해 가족 단위 관객 전체를 하나의 리듬 공동체로 묶는다. 전통 서커스 음악이 묘기의 안전 신호와 타이밍 조절에 집중했다면, 〈칠드런 아 스팅키〉의 선곡은 관객이 공연 내내 긍정적이고 능동적인 태도로 몰입하도록 한다.
비위계성이 창출한 서커스의 민주적 가치
〈칠드런 아 스팅키〉는 전통 서커스의 본질인 ‘기예와 스릴’을 유지하면서도 서사, 참여, 멀티미디어 음악이라는 요소를 성공적으로 결합해 낸다. 특히 어린이 공연의 핵심 가치인 ‘비위계성’을 극대화한 점은 높이 평가 받을만하다. 무대 위 어린이는 서사를 이끄는 주연이 되고, 성인 관객은 조언자가 아닌 평등한 동료 응원자로 위치한다.
이러한 수평적 구조는 공연장을 세대와 역할의 위계가 사라진 ‘놀이 민주주의’의 장으로 변모시킨다. 본 작품은 어린이 관객을 예술적 주체로 호명하고 가족 전체가 성취의 드라마를 공유하게 함으로써, 참여형 현대 서커스가 나아가야 할 비위계적이며 민주적 모델을 선명하게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