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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다시 인사 나누게 되었네요. 저는 공연을 연구하는 손옥주라고 합니다. 2026년이 시작되던 추운 겨울에 ‘아시테지 겨울축제’를 보고 글을 썼었는데, 어느덧 시간이 지나 푹푹 찌는듯한 더위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는 여름의 끝이 우리 앞에 와있어요. 더운 바람이 날아와 우리와 뺨을 부비는 7~8월이 되면 ‘아시테지 국제여름축제’도 막이 오르는데요. 국내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의 공연을 만날 수 있는 겨울축제와는 달리, 여름축제에는 매년 해외 단체의 공연이 여러 편 초청된답니다. 게다가 지난 겨울축제에서 큰 관심을 받았던 공연들과 여러분이 만나면 좋을 새로운 국내 공연들까지도 초대된다고 하니, ‘아시테지 여름축제’는 그야말로 속이 새빨갛게 익은 시원한 여름 수박처럼 크고 단단하게 여문 공연 잔치가 아닐까 싶어요. 그럼 지금부터, 시원하고 달콤하게 사각거리던 이번 여름축제 속 공연 이야기를 여러분께 전해드릴까 하는데요. 반짝이는 눈을 크게 뜨고, 귀를 쫑긋 열고, 제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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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나: 작은 동굴〉, 〈미스터 사티: 종이로 만든 세상〉, 〈이리저리 팔랑팔랑〉 공연사진 ⓒ ASSITEJ Korea_Fotobee
<타나: 작은 동굴>, <미스터 사티: 종이로 만든 세상>, <이리저리 팔랑팔랑>
여러분은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아지트에 몸을 숨겨본 적이 있나요? 마치 자그마한 달팽이 집에 쏙 들어간 채 눈만 빼꼼히 내밀어 밖을 살피는 꼬마 달팽이처럼 말이에요. 그 누구도 쉽게 찾을 수 없는 작은 공간에 들어서면 그 공간의 색깔과 질감이 세상 전부가 되어 내 온몸을 포근히 감싸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죠. 이탈리아의 단체 ‘콤파니아 티피오(Compagnia TPO)’의 <타나: 작은 동굴>에는 시간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하는 보금자리가 등장한답니다. 무대에 선 두 명의 무용수는 이 보금자리 모형을 활용해 공연 중간중간 우아한 나비의 날개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쭈글쭈글한 애벌레의 몸통이나 육각형의 벌통을 만들어내기도 하며 무대 위에 다양한 공간을 펼쳐 보이는데요. 특별히 만 3세 이하의 아주 어린 아기들을 위해 만들어진 이 공연은 관객석에서 공연을 보던 아기들이 무용수가 무대 위에 만들어놓은 보금자리 속으로 직접 꼬물꼬물 기어들어가 몸을 숨기며 신나게 놀아보는 것으로 마무리가 된답니다. 마찬가지로, 폴란드에서 온 ‘아토프리 씨어터(Atofri Theatre)’라는 단체의 <미스터 사티: 종이로 만든 세상> 역시 만 4세 이하의 어린아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공연이었는데요. 공연 속 두 명의 무용수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크거나 작거나 길거나 짧은 다양한 모양의, 그리고 하얗거나 노랗거나 파랗거나 빨간 다양한 색깔의 종이를 재료로 삼아 꼬마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재미있는 동작을 만들어낸답니다. 무대 양옆으로 길게 늘어서 앉아 있는 어린아이들의 눈앞에 무용수들이 직접 접어 만든 배나 모자, 비행기가 나타날 때면 아이들의 눈망울이 더욱 초롱초롱하게 빛나는데요. 공연의 마지막 순간에는 아이와 부모님 모두가 참여해 하얀 종이를 마음껏 쫘악 찢어보기도 하고, 꽈악 꽉 눌러 눈덩이처럼 뭉쳐보기도 하고, 공중으로 휘익 힘껏 던져보기도 한답니다. 흰 종이로 가득 찬 극장에서 마음껏 종이 놀이를 즐기던 부모님과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그 아름다운 순간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마음에 저도 모르게 마음속 투명 카메라 버튼을 꾸욱 눌러보기도 했는데요. 이처럼 유치원생 이전의 영유아를 위한 공연들은 꼬마 관객이 무대에 놓인 다양한 사물을 만지며 공연에 직접 참여하도록 돕는다는 점에서 좋은 예술 경험이 되어주는 것 같아요. 한편, 만 3세 이상의 아이들을 위한 <이리저리 팔랑팔랑>이라는 공연의 경우에는 관객이 직접 무대에 나와 체험하는 방식이 아니라 관객석에 앉아 관람하는 방식이었는데요. 두 명의 무용수가 서로 다른 세 가지 종류의 거대한 천을 연주자의 음악에 맞춰 이리저리 펄럭이며 펼쳐낼 때마다, 극장 전체가 꿈으로 가득 찬 거대한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것 같았어요. 천의 종류와 색깔에 따라 매 순간 무대에서 펼쳐지는 장면의 느낌이 달라졌는데 때로는 온몸에 살며시 스며드는 보들보들한 흰 구름처럼, 때로는 우리를 집어삼킬 듯이 다가오는 어두운 바다처럼, 극장의 분위기가 끊임없이 바뀌던 순간이 정말 흥미로웠답니다. 이렇듯 이번 ‘아시테지 여름축제’에서는 대사 없이 오로지 다양한 재료를 놀이 도구로 활용하며 어린 관객들과 즐겁게 소통하는 공연들을 만날 수 있었어요.


<잠들고 싶지 않아!>, <걸리버 여행기: ZOOM IN OUT> 공연사진 ⓒ ASSITEJ Korea_Fotobee
<잠들고 싶지 않아!>, <걸리버 여행기: ZOOM IN OUT>
한편, 이번 축제에서는 유치원생뿐만 아니라 초등학생까지도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는 공연 여러 편이 소개되기도 했어요. 여러분에게 너무나 친근한 내용이다 보니 어쩌면 공연을 보면서 ‘어? 저건 내 얘기인데? 공연을 만든 어른들에게 내 마음이 들킨 걸까?’라는 생각을 했을지도 몰라요. 특히 저는 체코에서 온 ‘드락 씨어터(Drak Theater)’의 <잠들고 싶지 않아!>를 초등학교 3학년인 저희 아이와 함께 관람하면서 전날 밤을 떠올리며 깔깔 웃었는데요. 육아로 지친 하루를 마무리하며 아이가 빨리 잠들기를 바라는 아빠의 모습과 그런 아빠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밤만 되면 우당탕탕 기운이 솟아나는 남매의 모습이 만들어낸 티격태격한 일상이 마치 저와 제 아이의 지난밤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았거든요. 이뿐만 아니라, 지난 겨울축제에서 관객들의 큰 사랑을 받았던 극단 ‘하땅세’의 <걸리버 여행기: ZOOM IN OUT>가 이번 여름축제에 다시 찾아오기도 했는데요. 주인공인 초등학생 ‘바다’가 꿈꾸는 낯설지만 흥미진진한 호기심의 세계를 따라가다 보면 우주비행사로, 축구선수로, 파티쉐로 변신하고 또 변신하는 ‘바다’의 모습이 카메라와 핸드폰의 도움으로 무대에서 더욱 실감 나게 그려지는 현장을 만날 수 있었어요. 특히 상상 속 세계를 탐험한 뒤에 현실로 돌아와 학교로 향하던 ‘바다’가 등굣길에 만난 개미에게 순식간에 관심을 빼앗기는 장면은 실제 등굣길에 만난 민달팽이에게 마음을 빼앗겨 한참이나 들여다보던 저희 아이의 뒷모습과 닮아있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랍니다. 아이들이 매 순간 마주하는 것들은 재미있는 이야기가 되어 어린 마음 깊은 곳에 한줄 한줄 흥미진진한 글을 써내려 가는 것 같아요.


<랑랑별 때때롱>, <완벽한 하루> 공연사진 ⓒ ASSITEJ Korea_Fotobee
<랑랑별 때때롱>, <완벽한 하루>
그 밖에도 이번 여름축제에서는 우리가 살아가는 자연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공연들도 만날 수 있었어요. 한국과 일본의 예술가들이 만나 함께 만든 공연 <랑랑별 때때롱>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의 모습을 꼭 닮은 500년 전의 랑랑별과 자연의 모습으로 돌아간 미래의 랑랑별을 배경으로 삼는데요. AI헬멧을 쓴 로봇에게 점령당해 차가운 과학도시로 변해버린 랑랑별이 황폐한 모습에서 벗어나 동식물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자연의 땅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통해 무조건적인 발전이 가져오는 위험성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답니다. 특히 이 공연은 여러분도 잘 아는 동화 <강아지똥>의 작가이신 권정생 선생님의 마지막 작품을 바탕으로 만든 것인데요. 그래서인지 글을 통해 인간과 자연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세상을 그려오신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이 공연에 깃들어있는 것만 같았어요. 자연이 주는 즐거움은 아일랜드와 영국의 예술가들로 이루어진 극단 ‘브라나르(NIE Branar)’의 유쾌한 공연 <완벽한 하루>를 통해서도 만날 수 있었죠. 세 명의 배우와 한 명의 연주자는 자연을 대표하는 비, 바람, 태양, 눈을 주제로 삼아 우리가 생활 속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분무기, 바람개비, 텀블러, 선풍기, 장화, 종이 등을 이용해 장면을 만드는데요.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를 변화무쌍한 자연 앞에서도 놀이의 즐거움을 잃지 않은 채 주어진 것들을 활용해 끊임없이 새로운 세계를 탐색한다는 점에서 너무나 뜻깊고도 재미있는 공연이었어요. 올여름에는 특히 기후 변화가 몰고 온 가뭄과 폭우 소식을 자주 접할 수 있었는데요. 이번 여름축제에서 만난 공연들을 통해 우리의 친구가 되어주는 자연의 소중함을 되새기며 자연의 회복을 위한 방법들을 고민해 볼 수 있었답니다.



<꼬마야, 꼬마야>, <내 친구 송아지>, <깜박, 달빛 아래 폴짝!> 공연사진 ⓒ ASSITEJ Korea_Fotobee
<꼬마야, 꼬마야>, <내 친구 송아지>, <깜박, 달빛 아래 폴짝!>
저는 어린이 공연을 생각하면 왠지 모르게 어렸을 적 친구들과 함께 했던 놀이도 떠오르고, 할머니가 들려주시던 옛이야기도 떠오르는데요. 그래서인지 이번 축제에 초대된 공연들을 통해 어린 시절 저의 모습과 지금은 90세가 넘은 저희 할머니의 옛 모습을 기억해 보기도 했답니다. 지난 겨울축제에서 만난 극단 ‘여기, 우리’의 <꼬마야, 꼬마야>는 앞서 이야기한 <걸리버 여행기>와 함께 다시 한번 여름축제를 찾아주었는데요. 가면을 쓴 네 명의 할머니를 따라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고기잡이>, <꼬마야 꼬마야> 등등 우리에게 친숙한 동요를 부르다 보면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어린 시절의 따뜻한 기억이 목소리를 따라 하나둘씩 몸 밖으로 꺼내어지는 것만 같았어요. 공연이 끝나고 배우들이 인사하던 순간에 비로소 마주했던 가면 속 얼굴들, 배우이자 엄마이기도 한 그 맑은 얼굴들 위로 흐르던 정직한 땀방울은 언제나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준답니다. 그런가 하면, 인형극연구소 ‘인스’의 <내 친구 송아지>라는 공연을 통해서는 가슴 아픈 우리나라의 역사와 마주하는 시간을 가져보기도 했어요. 저희 할머니는 6.25 전쟁을 직접 겪으신 분인데요. 저에게도 종종 ‘쌕쌕이’(할머니는 늘 전투기를 이렇게 부르셨어요)가 밤마다 마을을 폭격해 얼마나 무서웠는지, 북한군을 피해 피란 가던 길이 얼마나 멀고도 힘들었는지 말씀해주셨답니다. 그래서인지 6.25 전쟁 중에 자신이 기르는 송아지를 빼앗으려는 군인들에게서 송아지를 지키기 위해 애쓰다가 결국 자신의 가장 가까운 친구인 바로 그 송아지와 함께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 주인공 돌이의 모습이 더욱 슬프고 안타깝게 다가왔어요.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지구 어딘가에서는 수많은 돌이가 전쟁의 두려움과 싸우고 있는데요. 그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평화란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그 가치를 다시 한번 절실히 깨달았답니다. 한편,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아카데미’의 <깜박, 달빛 아래 폴짝!>은 전래동화인 <두부두부영차>와 김병하 작가님의 창작동화인 <고라니 텃밭>의 내용을 바탕으로 음악과 연극이 어우러지는 형식의 공연이었는데요. 공연이 중심이 되는 이야기를 어린이와 어른 모두에게 친숙한 표현들로 재미있게 풀어낸 점이 돋보였어요. 평소 클래식 음악 공연을 떠올리면 어렵거나 지루하다는 생각부터 드는 어린이들이 있을 텐데요. 이 공연의 경우에는 배우와 관객이 함께 어우러지는 순간이 많고, 심지어 악기를 연주하는 음악가들이 제자리에만 있는 게 아니라 마치 배우처럼 몸을 움직이기도 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관객의 흥미를 높인다는 점에서 새롭게 다가왔답니다. 그래서인지 공연 속 음악을 귀로 듣는 것만이 아니라, 음악이 전해주는 활기찬 리듬을 몸 전체로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었어요.
자, 지금까지 영유아를 위한 움직임 위주의 공연을 시작으로, 아이들의 일상을 다룬 공연과 자연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공연을 지나, 다양한 방식으로 옛이야기를 풀어낸 공연까지 살펴봤는데요. 이렇게 많은 공연 가운데 어린이 여러분은 어떤 공연에서 자신의 마음을 닮은 보석을 발견했을지 무척 궁금해집니다. 이번 축제의 안내책자를 펼쳐보면 10쪽에 ‘어린이청소년연극 헌장’이 나와 있는데요. 아이들을 위한 공연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를 정리한 헌장을 읽다 보면 제4조에 적힌 문구를 만나게 돼요: “어린이청소년연극은 어린이와 청소년을 호기심 가득한 경의의 세계, 연민으로 충만한 세계 그리고 상상을 뛰어넘는 세계로 인도해야 한다.” 이번 ‘아시테지 국제여름축제’를 알록달록하게 수놓은 열편의 공연은 호기심을 잃지 않고 언제나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성장하는 어린이 여러분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랍니다. 매일 다람쥐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학교와 학원 생활, 그리고 풀고 또 풀어도 줄어들지 않는 숙제에 지칠 때마다 공연 한 편 한 편을 떠올리며 마음속 상상의 끈을 다시 한번 꼭 쥐어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