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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러스트(Wanderlust)와의 첫 만남
2026년 4월, 필자는 몽골에서 주최하는 어린이청소년 공연예술축제인 ‘원더러스트(Wanderlust)’에 옵저버로 참여했다. 원더러스트는 몽골 최초의 국제 어린이청소년 공연예술 축제이자 아시테지 인터내셔널(ASSITEJ International)의 지역 협력 프로젝트이다. 몽골, 네팔, 인도네시아를 중심으로 농촌 및 소외 지역 어린이들에게 공연예술을 소개하고, 국제 교류를 통해 어린이청소년극 생태계를 확장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축제의 이름인 ‘원더러스트(Wanderlust)’는 독일어로 ‘여행에 대한 갈망’을 뜻한다. 이름처럼 참여 예술가들은 지역 공동체를 직접 찾아가 공연을 선보이며 사람과 사람, 지역과 지역을 연결한다. 2주간 진행된 축제 중 필자가 함께한 두 번째 파트는 참여 예술가들이 네 개의 팀으로 나뉘어 불간(Bulgan) 지역의 여러 솜(soum, 행정단위)을 순회하며 공연하는 일정이었다.
급하게 결정된 일정이었기에 출발 전에는 걱정도 많았다. 그러나 몽골에서 보낸 일주일은 그런 걱정을 무색하게 할 만큼 일상의 작은 불편함을 뛰어넘는 놀라운 환대와 만남의 경험을 선물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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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관람중인 어린이 관객
환대 속에서 만들어진 공동체
매일 덜컹거리는 긴 이동 끝에는 놀라운 환대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새로운 지역에 도착하면 지역 관계자들이 직접 공연팀을 맞이했고, 환영 인사와 음식이 이어졌다. 문화센터에서는 지역 아이들과 주민들의 전통춤과 노래, 장기자랑이 펼쳐졌고, 게르를 방문하거나 말을 타는 등 몽골의 문화를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시간도 마련되었다.
매일이 새로운 만남의 연속이었다. 어떤 길을 달리게 될지, 어떤 마을을 만나게 될지, 어떤 사람들과 인연을 맺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이동하는 시간, 식사 자리, 공연이 끝난 뒤의 저녁, 비좁은 숙소에 침낭을 깔고 함께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까지 교류는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언어가 잘 통하지 않아도 웃음과 몸짓, 그리고 구글 번역기 하나면 충분했다. 이곳에서의 시간은 다르게 흘러갔다. 며칠 사이에 우리는 이미 가족이 된 듯했다.
축제가 끝난 뒤 인도네시아의 아티스트 리키(Ricky)는 공유한 노트에서 이렇게 적었다. “친밀함(closeness)은 언제나 오랜 시간에서 오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적절한 공간과 함께한 경험, 그리고 있는 그대로 존재하려는 마음속에서 생겨난다. 마치 이제 막 시작되었지만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것처럼 느껴지는 어떤 연결들처럼.” 그의 말처럼, 유대감은 시간의 길이보다 함께한 경험의 밀도에서 자라난다. 그렇게 쌓인 유대는 낯선 우리를 어느새 하나의 공동체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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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의 전통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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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 사진
매일 다른 환경에서 관객과 가까이 만나는 공연
축제에는 몽골을 비롯해 인도네시아, 프랑스, 루마니아, 이탈리아 등 여러 나라의 예술가들이 참여했다. 몽골의 오지와 농촌 지역을 이동하는 축제의 특성에 맞게 대부분 4인 이하의 소규모 작품으로 구성되었으며, 기후위기와 생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주제로 한 어린이·청소년 공연들이 소개되었다.
이번 축제에서 만난 공연들은 대부분 무용, 마임, 서커스, 오브제 등 비언어 표현방식으로 통해 관객과 소통했다. 공연장은 매일 달랐고 기술적 환경도 완벽하지 않았지만, 그럴수록 공연자의 존재감(presence)과 관객을 향한 진심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관람한 공연 가운데 특히 기억에 남는 작품은 Mario & Mela의 신체극 〈Cicala's Tango〉, Carré Blanc Cie의 무용극 〈Chiffonnade〉, Kahanane Project의 오브제극 〈Laras〉, 그리고 Matteo의 마임극 〈Dots〉이었다. 특히 마테오(Matteo)는 음악이나 기술 장비 없이 작은 가방 하나만으로 공연을 완성하며 공연자의 존재 자체가 무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작은 규모와 단순한 형식 안에서 어린이 관객과 깊이 소통할 수 있음을 보여준 작품들이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 축제의 공연은 모두 아티스트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참여 예술가들은 공연료나 항공비 지원 없이 몽골의 여러 지역 아이들에게 좋은 공연을 전하고 싶다는 공통의 마음으로 이곳을 찾았다. 축제를 지탱한 것은 갖춰진 환경보다 어린이 관객을 만나고자 하는 예술가들의 자발적인 실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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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rré Blanc C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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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apt, Adapt! 적응하고 내맡기기의 연속
원더러스트는 결코 쉬운 환경의 축제는 아니었다. 숙소는 매번 예상 밖이었다. 학교 기숙사, 군인 숙소, 유치원 공간 등 다양한 장소에서 생활했고, 대부분 실내 화장실이나 샤워시설이 없었다. 오늘 밤 어디에서 자게 될지, 어떤 환경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축제 운영 역시 예측하기 어려웠다. 일정은 자주 변경되었고, 공연 장소에 도착해서야 상황을 알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영어로 소통 가능한 인력이 많지 않아 번역기를 통해 서로를 이해해야 했고, 공연 시작과 철수, 관객 정리 역시 참여자들이 서로 도우며 해결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 역시 공연 전후 스태프 역할을 함께했고, 저널리스트로 참여한 아티스트는 오퍼레이터 역할을 맡기도 했다. 매일 다른 공간에서 공연하는 예술가들에게 이러한 환경은 큰 도전이었다. 참여자들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자신만의 방식을 찾아가야 했다.
1주 차 일정을 마치고 떠나는 루마니아의 한 아티스트는 막 축제에 합류한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Just adapt and adapt. Then you will be fine(계속 적응하고 또 적응해. 그러면 괜찮을 거야).” 몽골에서 가장 자주 떠올린 단어는 바로 이 ‘adapt(적응)’과 ‘surrender(내맡김)’였다. 자연과 사람, 그리고 주어진 상황을 통제하려 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 스스로도 함께 변화하는 일이었다.
동시에 이번 축제는 또 하나의 질문을 남겼다. 많은 참여 예술가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한 것은 바로 '쉴 시간의 부재'였다. 프로그램은 가득하고, 매일 이동과 공연이 반복되며 충분한 휴식을 취하기는 쉽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깊은 교류는 공식 프로그램 밖에서 이루어졌다. 한밤의 배구 경기, 문화센터에서 즉흥적으로 열린 댄스파티, 이동 중에 함께 부른 노래처럼 공식 일정 사이의 여유로운 시간 속에서 진짜 교류가 이루어졌다. 아이들, 마을 대표, 선생님, 예술가가 함께 춤추던 장면은 공연 이상의 공동체적 경험으로 진하게 남아 있다.
이번 경험은 진정한 네트워킹이 회의실보다 함께 살아가는 일상의 시간 속에서 만들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국제축제는 이러한 만남이 일어날 수 있는 '빈틈의 시간'을 어떻게 설계해야 할까.
2027 한국에서의 아시테지 세계총회를 바라보며
축제가 끝난 뒤, 단체 대화방에는 서로를 그리워하는 애정 어린 메시지들이 이어졌다. 원더러스트에서 시작된 인연은 축제가 끝난 뒤에도 계속되고 있었다. 원더러스트는 완성된 결과보다 참여 예술가와 지역 공동체가 함께 변화하며 만들어가는 살아 있는 과정에 가까웠다. 원더러스트 축제는 올해 8월 인도네시아, 내년 5월 네팔에서 또 다른 방식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2027년, 한국에서 아시테지 세계총회 및 국제공연예술축제가 열린다. 몽골에서의 경험은 좋은 국제축제의 역할과 지향해야 할 방향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훌륭한 공연을 소개하는 것을 넘어, 예술가와 지역, 어린이, 그리고 서로 다른 문화가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장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 어쩌면 축제는 진정한 만남이 일어날 때 비로소 살아 움직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2027년 한국에서 열릴 아시테지 세계총회가 또 하나의 의미 있는 만남과 연결을 만들어가는 축제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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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징 세레모니 단체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