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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린이청소년극 IN: 역사와 기록
    1984년 <연극과 교육>(발행인 김우옥 / 편집인 송애경, 김선, 고순덕, 송인현)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하여,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국내 유일의 간행물로서 발행되었습니다. 이후 제12집을 끝으로 휴간되었다가, 2015년 <아동청소년극포럼>(발행인 김숙희 / 편집인 김유미)으로 재창간되었습니다. 2022년부터는 <어린이청소년극 IN>(발행인 방지영 / 편집인 최지영)으로 명칭을 개정하였습니다. 본지는 전문 비평지로서의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주)한국학술정보(KISS)에 등재되었으며, 오프라인 책자 발간과 더불어 네이버 블로그, SNS 등 온라인 플랫폼을 적극 활용하여 현장 이슈에 기민하게 반응하며 접근성을 확장해 왔습니다. 나아가 2026년부터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을 통해 자체 포럼을 개최하는 등 어린이청소년극의 담론을 형성하는 실천적 플랫폼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통권24] [2026 9월호] 리뷰1 2026-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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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사상 위에 놓인 한 사람의 이야기

     


    출처: 문화예술협동조합 아이야

     

    누군가를 기억할 때, 우리는 그 사람의 무엇을 떠올리는가.

    문화예술협동조합 아이야의 음악극 <수상한 제삿날>에서 손녀 연이는 할머니의 제사상을 준비하며 어동육서, 두동미서, 좌포우혜, 조율이시와 같은 규칙을 찾아본다. 그러다 자신이 기억하는 할머니를 떠올리며 상을 차리기 시작한다. “내가 차리는 우리 할머니 제사상이잖아.”

    커피와 치즈케이크, 만두와 초밥, 홍시. 음식 하나하나에는 연이와 할머니가 함께했던 시간이 담겨 있다. 달달한 봉지커피를 좋아했지만 마시면 배가 아팠던 사람, 새로 생긴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만나 즐거워했던 사람, 꾸덕한 치즈케이크와 만두를 좋아했던 사람. ‘할머니라는 익숙한 호칭 뒤에 있던 한 사람의 취향이 구체적인 모습으로 드러난다.

    이 장면을 보며 우리 반 한 학생이 쓴 빈 종이라는 시가 떠올랐다.

     

    우리는 모두 빈 종이를 받는다

     

    빈 종이에 무엇을 쓰느냐에 따라

    내용이 다르다

     

    나는 편지를 쓴다

    내 작은 편지 하나가

    용기가 되고, 바람이 된다

     

    그 편지 하나로

    감정이 바뀐다

     

    연이에게 할머니의 제사상은 하나의 빈 종이와도 같다. 정해진 규칙에 따라 차릴 수도 있지만, 연이는 자신이 기억하는 할머니의 취향과 함께했던 시간을 그 위에 놓는다. 무엇을 올리느냐에 따라 제사상에 담기는 할머니의 모습도 달라진다. 학생의 시에서 편지가 마음을 전하는 수단이 되듯, 연이가 차린 상 역시 떠난 할머니에게 자신의 기억과 마음을 전하는 방식이 된다. 무엇을 어디에 놓아야 하는지를 따지던 상차림은 점차 나는 이 사람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를 묻는 자리로 바뀐다.

     

    같은 사람, 서로 다른 기억

     


     

    출처: 문화예술협동조합 아이야

     

    수상한 제삿날에서 한 사람을 기억하는 목소리는 하나가 아니다. 청소년인 연이가 기억하는 할머니, 오랜 세월을 함께 살아온 할아버지가 기억하는 아내, 그리고 할머니 스스로 말하는 자신의 삶이 한 무대에 놓인다. 여기에 삼신, 성주신, 조왕신, 토주신, 문신과 같은 가신들이 더해진다. 오래된 집을 지켜 온 이들은 제사 준비에 함께하며, 개인의 기억만으로는 닿기 어려운 집의 시간을 무대에 불러온다.

    이 서로 다른 기억은 노래를 통해 장면으로 펼쳐진다. 연이의 기억을 따라 할머니가 좋아했던 음식들이 노래에 등장하고,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시간은 꽃씨를 심고 서로를 기다리던 젊은 날에서 마당에 꽃을 가꾸고 자녀를 키우며 살아온 세월로 이어진다. 처음 손을 잡았던 돌담길과 함께 나누어 먹었던 브라보콘 같은 작은 기억도 노래 속에서 되살아난다. 두 사람이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설명하는 말보다 함께 먹었던 아이스크림 하나가 그 관계를 더 가깝게 느끼게 한다. 노래는 음식과 꽃, 장소에 얽힌 구체적인 기억을 현재의 무대 위로 불러낸다.

    그 기억은 다정한 순간으로만 채워지는 것은 아니다. 할머니는 가족이 미처 알지 못했던 자신의 감정과 이야기를 직접 꺼내놓는다. 앞서 노래로 펼쳐진 두 사람의 기억도 단순한 추억으로만 머물지 않는다. 사랑했던 시간 곁에 서운함과 외로움도 함께 있었음을 드러내며, 관객은 가족이 기억하는 할머니와 할머니 스스로 말하는 삶 사이의 간격을 보게 된다. 이 장면은 할머니를 누군가의 기억 속 인물로 남겨두지 않고, 자신의 삶과 감정을 직접 말하는 인물로 세운다.

     

    보이는 전통, 들리는 전통

     

    <수상한 제삿날>의 한국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데에는 음악의 역할도 크다. 악사로 무대에 참여한 최영석 음악감독은 손끝으로 전자 장치를 연주하며 국악기를 연상시키는 음색을 만들어낸다. 이 음색은 가신과 제사, 오래된 집이 이루는 무대의 정서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라이브 연주는 때로 효과음처럼 장면을 받치고, 때로는 미리 제작된 음원 반주에 더해지며 음악의 밀도를 높인다.

    무엇보다 배우의 연기와 장면의 변화에 맞춰 연주가 실시간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 중요하다. 무대 한편에서 장면을 살피며 필요한 순간에 연주를 보태는 악사의 모습은 집과 가족의 곳곳을 지키는 가신과도 닮았다. 소리로 무대를 지키는 무대 위의 가신이라 할 만하다.

    노래가 인물들의 기억을 구체적인 장면으로 보여준다면, 라이브 연주는 그 장면들이 펼쳐지는 순간의 리듬과 호흡을 만든다. 가사에 담긴 이야기와 현장에서 만들어지는 음향이 맞물리면서 과거의 회상은 지금 이 자리의 공연으로 전환된다. 작품 속에서 음악은 기억을 설명하는 배경이 아니라, 과거의 시간을 현재의 무대에 불러오는 공연 언어로 기능한다.

     

    꽃과 제사상, 삶을 다시 구성하는 방식

     

     

    출처: 문화예술협동조합 아이야

     

    꽃은 작품 속 시간을 따라 의미를 달리한다. 젊은 시절의 꽃씨는 두 사람의 마음을 전하는 매개이고, 마당의 꽃밭은 함께 살아온 세월이 쌓인 장소다. 마지막 곡 기억의 꽃밭에 이르면 꽃은 떠난 이를 떠올리는 이미지로 확장된다. 두 사람 사이의 작은 꽃씨가 사랑과 가족의 시간을 거쳐 꽃밭으로 자라난 셈이다. 거듭 등장한 꽃의 이미지는 앞선 장면과 마지막 곡을 하나의 흐름으로 묶는다.

    꽃밭이 두 사람이 함께 살아온 시간을 보여주는 장소라면, 제사상은 여러 사람의 이야기가 모이는 자리다. 상에 무엇을 올릴지 묻던 이야기는 그 자리에 누구의 어떤 기억을 담을지 묻는 이야기로 넓어진다. 작품은 제사를 그대로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지도, 낡은 형식이라며 밀어내지도 않는다. 연이가 차린 상에서 출발해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와 노래를 이어가며, 제사의 형식 자체보다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기억의 행위로 시선을 옮긴다.

    처음 던진 질문으로 돌아가 본다. 누군가를 기억할 때, 우리는 그 사람의 무엇을 떠올리는가. <수상한 제삿날>은 하나의 답을 내놓지 않는다. 대신 음식과 꽃과 노래로,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서 울리는 소리로 서로 다른 답이 한 상에 함께 놓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기억을 차리는 일은 내가 아는 모습만으로 한 사람의 이야기를 완성하는 일이 아니다. 내 기억 곁에 다른 이의 기억을 놓고, 내가 알지 못했던 그의 삶까지 함께 바라보는 일이다.